그는 애쓰며 수고했던 삶을 되돌아보면서, 상담사의 길을 오기까지 여러 가지의 직업군으로 삶을 걸어왔습니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보다는 감사함이 많아서 무조건 성실하게 살아온 삶이었습니다. 상담사가 되면서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게 되었고, 그 때서야 자신을 돌보지 못함을 눈물로써 용서를 구했습니다. “정녕 주께서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먹고 살려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도록 애써 수고하는 모든 일들도 다 부질없는 짓이다. 주님께 사랑받는 사람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주께로부터 복을 받기 때문이다.“ (시편 127:2)교수님으로부터 그는
질투심과 시기심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공통된 부분도 있지만 둘은 분명하게 구별이 됩니다. 질투심은 어느 정도 정신의 성숙이 진행된 상태에서 질투할 구체적 대상에 대해 갖는 심리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자기 것을 타인에게 뺏길까봐에 대한 두려움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질투심은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질투하는 사람, 질투하는 대상, 이 두 사람을 빼앗기지 않을려는 대상입니다. 질투에는 정도차이가 있습니다. 가벼운 질투는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과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나도 그들이 넘 부럽다’, ‘나도 그들처럼 대박났으면’ …… 부러
상담자는 ‘상담을 하는 사람’이라 하고, 내담자는 ‘상담을 받는 사람’이라 칭합니다. 상담은 도움을 받는 사람, 도움을 주는 사람, 도움을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간의 관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이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 내담자와 전문적 훈련을 통해 수련기간을 마친 사람인 상담자, 두 사람의 상담관계라는 요소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담이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과의 대면관계에서 생활 속에서의 주 호소 문제해결과 사고·행동 및 감정 측면의 인간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학습과정이라고
우리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리허설도 없이 바로 현장으로 투입이 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은 늘 ‘공사중’입니다. 공사가 끝났다고 생각하면 완성품은 여지없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또 다른 공사 현장에서 자신을 보곤 합니다.심리학자 칼 융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머리가 아프다고 목을 밸 수 없는 것과 마친가지로 섀도(그림자)를 억압만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그것을 내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지고 있는 열등, 수치스러움,
우리는 사랑을 빙자해서 자기가 얻고 싶은 것을 얻습니다. 그것을 ‘자애(自愛)’라고 합니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가 소중하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가 바로 ‘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너)은 누구입니까? 당신(너)은 또 다른 ‘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자녀, 친구, 가족에게 자신이 받고 싶은 것을 해줍니다. 사실 자신이 받고 싶다는 말도
심리학자 칼 융은 40세를 전 후로 하여 행동과 의식의 탈바꿈이 발생되는 결정적 전환기로 보았습니다. 중년기는 사춘기 때와 마찬가지로, 삶에 대해 새로운 방향을 정립하여 잠재되어 있던 자아를 깨워서 자아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함으로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하지만 중년여성은 아들, 딸이 결혼한 후에 이에 대한 상실감으로 삶에 대한 회의를 하게 되고, 상실감이 소외감으로 또 다시 소외감이 상실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함으로써 우울증을 앓게 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로는 그동안
프로이트는 어린 시절에 외상적 경험이 히스테리를 만들었다고 보았다. 이때 외상은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 아이의 자아가 과도한 긴장을 누그러뜨려서 견딜만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무의식적 감정을 의미한다. 외상은 외부의 공격이 아니라 그 공격이 남긴 심리적 흔적이라 할 수 있다.자신이 받은 외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자신 안에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자가 치유 능력’이라 한다. 또한 우리는 충분히 창조적이며 생산적이며 충만한 삶을 살게 하는 자기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자기를 보존하는 것은 인간의
‘저는 자기애가 없는 걸까요?’ 울상인 얼굴로 물어온다. 과연 자기애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자기애는 건강한 것이고 누구나 자기애를 가지고 있다.여기서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 대상에게 자기만의 과대욕구에 대한 기대가 좌절하였을 때 마치 자기애가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코헛은 ‘과대자기’라고 표현한다. 이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공감적 반응을 받지 못하였을 때 자기와 대상이 타인에 대한 인정욕구가 과도해지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자기가 적고 약하게 되며 반대로 자기가 부풀린
아이들의 부모의 거울입니다.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서 관계를 배우게 됩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잔소리가 아니라 엄마 아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궁금한 겁니다. 즐거운 일이면 더욱 좋습니다. 조금 속상했던 일 중에서 아이에게 말해도 될 만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습니다. 오늘 무엇을 하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야기해준다면 아이도 똑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 할 수 있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질문은 이렇습니다."급식 시간에 먹기 힘든 반찬은 없었어?", "친구랑 놀 때 속상한 점은 없었어?", "OO시간에
쥐를 잡기 위해서 쥐약을 탐스럽게 포장해 놨는데, 첫 번째, 쥐는 이것을 먹어야 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 고민하면서 배가 고프닌까 덥석 먹었다. 그래서 거의 죽을 지경까지 왔다. 두 번째, 쥐는 쥐약이 먹음직스럽게 포장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으니, ‘에이 먹고 죽자’ 라고 생각하면서 행동으로 실천했다. 어떤 차이일까?성격을 어떤 학자는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의 독특한 양식’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학자는 ‘개인의 내부에서 특징적인 행동과 사고를 결정하는 정신물리학적 체계의 역동적인 조직’이라
철새를 탐조하는 사람들은 위장복을 입고 나무와 풀 사이에 적어도 두 시간 이상을 움직이지 않고 나무와 하나가 된다. 그래야 철새들이 의심하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위장술을 써야한다. 새를 사랑하는 사람은 기다림의 시간을 충분히 인내한다.그러나, 일시적으로 희귀 새를 촬영하는 기자들을 그런 기다림 없이 마구 카메라를 들이댄다. 당연 철새들은 그 자리를 떠나고 만다. 어떤 차이일까? 그 행동이 서로 옳다 틀리다가 아닌 다름이란 걸 알 수 있다. 결국 사고의 관점이다.철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습성을
다름(Different)과 틀림(Error or Wrong)은 전혀 비교대상이 아니다. 다름은 ‘역시 천재라 다르군’ 에서의 ‘특별히 표나는 데가 있다’ 라는 의미를 지닌다.더 쉽게 말하면 ‘같지 않다’ 라고도 말한다. 또한 ‘다르다’ 는 다양한 가능성과 창의성을 예측할 수 있는 기대감을 준다고 보았다. 그러나, ‘틀림’은 흔백 논리나 이분법적 사고에서 ‘이것 아니면 저것’ 둘 중 다른 것을 생각하거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라는 것이다.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에 있어서도 ‘너는 내 생각과 틀려’ 라는 말은 ‘너는 틀렸어’라는 부정의 의
자녀양육의 어려움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분석을 통해서 처절하게 경험하는 것은 대물림이었습니다. 자신의 과거의 모습이 과거로 끝나지 않음을 쏟아지는 눈물로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과거의 모습이 현재이고, 현재의 모습이 과거이다”란 말에 소름이 끼치는 사람도 의외로 많습니다. 그것은 현재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자기수용, 자기이해’라는 단어를 우리는 수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자신 안으로 들어와서 무의식으로 경험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가슴으로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정신분석가 프로이트가 말하는 상실을 대처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애도와 멜랑콜리입니다. “멜랑콜리”는 무슨 뜻일까요? ‘멜랑’은 ‘검다’는 뜻, ‘멜라닌 색소’를 말할 때 쓰이는 접두어입니다. ‘꼴리’는 ‘딱딱한’이라는 뜻입니다. 혈관 속에 지방이 축적되어 딱딱해지는 ‘콜레스테롤’의 ‘콜’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멜랑꼴리’는 검은 담즙을 의미합니다.사람이 우울해지고 침울해지는 것을 히포크라테스는 멜랑꼴리라고 제시하였습니다. 프로이트 시대 때는 “멜랑콜리아”라고 불렀던 것을 요즘엔 “우울증”이라고
상담사의 기본은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주는 것입니다. 끝까지 믿어주는 게 바로 치유가 시작됩니다. 내담자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끔 도와주는 것이 상담사의 역할입니다. 내담자가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 그 내담자가 나아갈 방향성을 스스로를 찾게 됩니다. 그 때 상담사는 내담자가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이 때, 내담자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할 수 있을까요? 라고 물으면, 그 때서야 내담자의 언어로 대답해 주면 됩니다. 상담사는 진단을 결코 내릴 필
억울함을 당하거나 수치심, 죄책감이 올라오면 며칠이고 잠을 못 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 깊이 살펴보면, 자신을 무시했다는 생각과 마치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고 표현할 만큼의 상실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원인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요?결국, 이러한 감정들은 자기결손에서 옵니다. 이러한 감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입니다. 정도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고, 자신의 통찰 정도에 따라 좋은 에너지로 변형됩니다. 자기결손이 크면 클수록 부정의 감정의 폭은 커지고, 자기애적 성향도 강해집니다.생애 초기에 어머니의 공감
사랑은 무엇일까요? 보이지도 증명하지도, 크다 작다 라고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며, ...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노래를 듣기만 해도 따스함을 느낍니다. 맨 첫 마디가 ‘오래 참는다’는 언어입니다. 오래 참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람마다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차이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화를 참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을 참기
김소월님의 「진달래꽃」에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라는 표현은 반어적으로 사용됩니다. 즉, 속마음은 ‘가지 말아요’ 고 붙잡고 싶지만, 겉으로는 쿨(cool) 하게 보입니다. 자신의 진심과는 반대로 말하는 것을 ‘반어’라고 합니다.일상 생활 속에서 놀라운 알아차림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난 후 집에 들어오면 뭔지 모를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혼란스러운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 원인은 ‘이중메세지의 여왕이었구나’ 하고 무릎을 치는 순간, 많은 날들의 혼란스러움
어른이 되어서도 그리워집니다. 아이들 2-3개월 때 가제손수건으로 얼굴을 덮었다가 손수건을 떼어 주면 처음에는 표정이 두려움과 놀램으로 보였다가 자주 하다보면 얼굴에 웃음 가득한 경험을 합니다. 나중에는 아이가 스스로 얼굴에 덮었다가 떼면서 놀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손수건이 빨리 떼어지지 않으면 엄청 놀래서 울기도 합니다.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놀이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인생의 좌우할 만큼의 관계 경험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선조들의 지혜로움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놀이의 제목은 ‘까꿍놀이’ 입
불안과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일상 속에서 어쩌면 매순간 불안과 두려운 마음을 느끼고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나만의 일’ 이라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감정입니다.불안은 심리적인 공포를 동반합니다. 신체적 반응으로는 얼굴 붉어짐, 떨림, 딸 흘림, 표정경직, 손바닥에 땀 흠뻑 젖음, 다리 흔들거리기, 헛기침 등으로 들어나기도 합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외부의 위험에서 오는 것을 공포라고 하였고, 그것과 마찬가지로 내적인 위험도 두려워할 수 있음을 알아내면서 그것을 ‘불안’이라는 용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