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힐링에세이]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박경은 철학박사(심리학 전공)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박경은 철학박사(심리학 전공)

K의 사례를 들어보자. K와 A는 절친처럼 가까운 사이였다. 어느 날부터, A가 반려동물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K는 항상 전화를 하면 반려동물의 안부와 A의 심리상태에 대해 안부를 물었다. 그래서 통화의 대부분이 반려동물 이야기였고, 그런 일들이 반복이 되자 K는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렸다. K가 반려동물에 관심을 보였다기보다는 A의 가장 큰 걱정을 들어주고자 했던 반려동물의 안부가 두 사람관계에 불편함으로 왔다. K가 솔직하지 않았다. 때론 K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끝까지 경청해 주고 공감 받고 싶었는데, 말하는 도중에 다시 반려동물 이야기로 전환이 되었던 것이 화가 났다. K가 솔직하지 못한 것이 K의 기질적 성향 때문이었다. 차라리 “반려동물에 대해서 이제 그만 얘기했음 좋겠다.”, 아니면 “반려동물 이야기는 5분만 하자.” 이런 식으로 말했어도 A는 충분히 그렇게 했을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불편한 진실’이 그동안의 관계를 서먹하고 어색하고 낯설게 할 수 있다. 이 또한 주체는 K라는 사실을 알면서 얼음인 채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K에게만 책임을 더 안기는 것이 불편해 보인다. 스스로 자책하지 않길 바라며 이런 경우에는 누구든 허심탄회하게, 진솔하게 대화하면서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서 인간은 부족한대로 서로 부대끼며 협력하면서 사는 것 같다. 

이렇듯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는 자신의 취미, 반려동물, 직장, 집안 일, 부부관계, 모임 등 먼저 관심을 보이면 이런 내용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존중이며 배려다. 그러나 관심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존중받지 못한, 공감되지 않는, 배려 받지 못했다고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그리고 너와 나, 우리가 서로 이해가 가능할까? 어쩌면 이해한다는 것보다 자신이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수용할 수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우리는 수용할 수 없을 때 서운해 하고 억울해하고 분노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이 만큼 이해해 줬으면 된 것 아니냐? 도대체 얼마나 더 이해해 달라는 것이냐?” 라고 분노 아닌 공격성을 띄면서 대화가 아닌 볼멘소리를 낸다. 그래서 더 이상의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국가로 확장시켜 탐색해봐야 한다.

부모와 자녀사이에서, 부모가 자녀를 인격적으로 양육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부모입장에서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 자녀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반대로 자녀입장에서는 한없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부모인 것 같고, 무엇을 할 때 마다 못하게 하는 것처럼 느끼고, 감시받고 비난하는 것처럼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너무나 상반된 이해이며, 갈등이며 피할 수 없는 충돌이다. 그만큼 서로의 입장 차이를 가늠 할 수도 없고, 누가 더 이해하고 사랑하고 배려한다는 그 자체 또한 단정 지을 수도 없으며 어디서부터 소통을 시작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될 수 있다. 이것은 부모와 자녀관계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모두 다 적용된다.

우리의 삶은 부모로부터, 학교로부터, 사회로부터, 국가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우면서도 구속되어 있는가? 자유롭지도 않으면서 구속은 더 강력하게 느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고, 살아내야만 한다. 잘 이겨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물음에 대한 답에 따라 교만과 겸손이란 대극적 판가름으로 자신의 언어와 행동을 좌우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자신을 수용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상황이든 수용하려고 하면서 스스로 겸손을 실천하게 된다. 다른 한 편으로 자신을 위대한 사람으로 생각한다면 교만이란 묵직한 그림자가 자신의 잠재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할 수 있으므로 늘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 어쩌면 한 끝 차이로 우리는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듯이, 이해와 수용 그리고 겸손과 교만, 거부와 허용 등 서로 반대의 길을 한 순간의 선택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에게 이해받기보다는 자신의 얼마나 이해하고 수용하고 있는지, 겸손의 자세를 항상 가지고 있는지를 매순간 거울처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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