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은의 힐링에세이]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코로나19를 접한 지 삼년 째 접어든다. 학생들은 비대면 수업으로 많은 날들이 진행되었고,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를 만나서 적응하고 관계 맺음을 배우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던 친구들과의 만남이 더 익숙하고 새 학년이 되어도 새 친구에 대한 설렘보다는 기본 생활 습관이 깨져있는 현실에서 학교 적응과 학습에 대한 진도의 차이, 자신의 학습 능력에 따른 진로문제로 큰 고심을 하고 있다. 현실이 두려워 게임으로 회피해 버리는 학생들, 휴대폰을 손에서 떼어놓지 않고 생활하는 학생들, 그런 사회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학생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있다. 이런 가운데 부모는 부모대로 걱정이고, 자녀는 자녀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소통이 가능하다면 가장 이상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장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의 평안을 기도하고 믿음으로 바라봐주는 것이다. 

슬하에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이 있다. 항상 기준은 자신이다. 나의 기준으로 볼 때 아들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사춘기가 시작되었고, 점점 심해져서 급기야 나는 아들에게 욕도 하고 소리도 버럭 지르고, 욱하는 감정을 자주 들어냈다. 밤새고 게임하는 아들 그보다도 나를 대하는 아들의 공격적인 태도를 이해하려고 해도 나의 이해부족과 인내심이 약하다는 것을 자주 증명하게 됨으로써 심한 좌절감을 계속해서 경험하게 된다. 부모의 보호 안에서, 자녀의 양육이 포근하고 따뜻했더라도(부모의 입장에서) 모든 원인이 부모에게 있다고 말하는 이기적인 자녀는 분명 존재한다. 여기서 ‘이기적’이란 표현은 ‘내리사랑’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단어일 뿐, 실제적인 이기적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부모가 인격적으로 자녀를 대하고 충분한 영역에서 의존하도록 펼쳐놓았다고 하더라도 그 자녀가 인격이 아닌 그것을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이용했다면 자녀를 존중했던 것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니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것은 부모입장이다. 이런 경우 오히려 자녀의 이기심을 더해주는 ‘독’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항상 좋은 것이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자녀의 입장에서는 한없이 부족하고 불평 불만투성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상처만을 우겨댄다. 그것이 앞뒤 상황을 자르고 그 부분만을 고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우 부모와 자녀간의 상호작용보다는 오히려 등을 지게 되는 경우가 벌어진다. 어쩌면 그 시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누구의 잘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표현하지 않거나 표현이 투박하다고 해서 고마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표현을 잘한다고 해서 100% 진심이라 생각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사람마다 지닌 기질과 성향에 따라 표현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부모는 ‘사람은 이기적이다’를 자녀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배제해버린 것이 결국 스스로 상처를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본능대로만 살아간다면 사람을 ‘인간’이라는 언어로 “사람 '인(人)'”자를 쓰지 않았겠지? 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이 사람다워야지, 그것이 곧 인간(人間)이지.’ 이런 생각을 아직까지 하고 있는 구시대의 사람인가 순간 자신에게 놀라기도 하지만,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우리가 배움의 끈을 놓치지 않는 것도 본능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무한함을 품고 있는 존재도 ‘사람’이다. 코로나19 속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기적이길 바란다. 이 말의 의미는 목표와 성취에 욕심을 내서 살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누구든 얼마든지 정해진 틀을 뛰어넘을 잠재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애쓰지도 않고, 뛰어넘을 생각도 없다. 정해놓은 틀 속에서 장악하려고 하거나 안주하려고만 한다. 그게 세상의 전부라고 믿어버린다. 차라리 믿어버리는 것이 속 편할 수도 있다. 그렇게 누릴 수 있는 사람이면 그나마 삶이 쉽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모나 자신보다 더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 성장을 위해서 깨지고 또 깨지면서 현재보다 더 높은 차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깨달음의 경지일지도 모르겠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