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려는 마스크에 끈이 없다정말 어이가 없다살다보면 황당한 일이 종종 생긴다. 기대와 다른 결과에 실망을 하고, 각오한 것을 이겨내면 성취감을 느낀다. 하지만 황당함이란 감정은 기대나 각오와는 달리 아무런 예상을 못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당연함의 배신’이다. 비슷한 말로는 당혹감이 있고 슬픔과 더해지면 황망함이 된다. 형용사인 황당하다가 동사로 변하면 당황하다가 된다. ‘어이’는 곡식을 갈아 즙을 내는 맷돌-지금으로 치면 착즙기-의 손잡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이없다’는 말 그대로 그 손잡이가 사라진, 황당한 상황을 뜻한다. 곡식을
너의 꿉꿉한 마음에깊은 입김 불어 뽀송함을 선물하고 싶다wanna be ur dryerwanna be ur lover사람 마음이 그렇다. 추우면 여름이 그립고 더우면 겨울이 빨리 왔으면 한다. 바짝바짝 마르는 건조한 날씨에는 촉촉한 습기가 그립고 꿉꿉한 장마철에는 뽀송뽀송함이 간절해진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 대신 다른 계절이 좋아 보인다는 말도 유효하다. 건조할 때 뽀송함을 주던 습기는 장마철에는 높은 불쾌지수의 주범이다. 드라이어는 물기를 말려주는 고마운 기계다. 샤워 후 물기를 말리면서 생각해본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상쾌
벗고나온 껍질을 보며매미는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서바랜 배냇저고리 보여주며 막둥이에게 물었더니아빠, 왜 과거를 들추어요?아차, 그렇지날개 펼쳐 날아다닐 몸답답함에 가두지 말아야지 매미가 껍질을 벗는 계절이다. 몇 년을 땅속 굼벵이로 살다가 한달 남짓의 짧은 성충 생활을 하기 위해서다. 벗고 나간 매미 껍질들이 발에 치이고 눈에 밟힌다. 이 안에서 매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껍질을 벗는 순간 매미는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날아다니는 녀석을 잡아 물어볼 수도 없어 (언어가 달라서) 마침 얼마 전 생일을 맞은 막둥이에게 묻는다. 소재는
이름이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살아낸 세월도 시가 된다핀 꽃 지면 씨앗 남듯삶의 종착역은 눈물괴짜 화가가 그린 이름 석자에눈물 한 움큼 쏟아지는 걸 보면틀림없다허투루 산 인생 없고저마다 다른 이야기들이백지 위에 예쁘게 펼쳐진다박석신 선생이 책을 냈다기에 주문해 읽었다. 이름꽃시를 시작하게 된 과정과 그동안 만난 사연들, 창의성과 예술교육에 대한 생각, 이웃과 함께한 여러 프로젝트, 앞으로의 꿈과 계획 들이 쓰여 있었다.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술 한잔 기울이며 듣는 말 같았다. 여러 번 무릎을 치고 자주 아,소리를 내며 감탄했다.이미 그
비 온 뒤의 대나무는뒷담화를 거름 삼아 자란다 원망 어린 고발 부끄러운 고백목적지 없는 비밀나무의 마디를 밀어올린다무엇 하나 해줄 수 없이그저 듣기만 하는 속터짐에저것들도 모여서 떠든다 떠들면서 자란다 새나갈 틈 없이 높고 촘촘하게예로부터 대나무는 절개와 지조를 상징했다. 숲이 되면 익명의 고민 상담, 내부 고발과 폭로, 비밀의 발설을 받아주는 시스템을 뜻하기도 한다. 임금님 귀와 관련된 우화 때문이다. 억울하거나 답답하기 짝이 없는 사람에게는 고맙기 짝이 없는 존재다. 몇 해 전 담양에서 촬영을 하는데 대나무 순을 보았다. 발음
흘러간 것이 탈색되는 이유는생생하면 아프기 때문지나간 것이 변색되는 이유는리얼하면 슬프기 때문시간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만흑백논리에 빠지지 않을래요내 방식대로 아픔 슬픔 몰아낼래요시간의 입자가 색을 잃어가면눈물의 도료로 염색을 할게요한국전쟁 시절의 사진에 색을 입힌 걸 보았다. 한번도 그 시절이 '컬러'라고 생각해 본 일이 없었으므로 몹시 놀랐다. 생각해 보면 컬러가 아닌 세월은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러고나니 당시의 공포와 고단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흑백 기록이라는 틀 안에 과거를 가두어놓고 느껴왔던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흐르는 세월에 과자들둥둥 떠 내려왔다무당집 인테리어 같은 달콤함을집는 꼬질꼬질 유년의 손가락아직도! 라고 감탄하는데얼마나 살았다고?! 라고 강물이 되묻는다 세월 흐르면 사라진다는믿음일지 각오일지를 무색케불쑥 다시 등장한 무명의 달짝지근함동네 마트에서 화사하기 그지없는 옛날 과자들을 발견했다. 말랑한 젤리 종류, 딱딱한 사탕류, 스폰지 같은 느낌의 과자 등 종류도 다양하다. 겉모습은 화려하고 맛은 달기만 하다. 아마도 레시피의 대부분은 설탕이리라. 적옥춘이라고 쓰여 있으니 그런가 보다 하지, 지금껏 한 번도 이름들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들의 동심이 자라서욕실에 나란히 걸렸다마술처럼 순식간에컸다 아니라 변했다살짝 나중이면 저것마저 독립할 텐데나란히 자리잡아 사는 동안자주 마주보아야겠다나 늙어가는 것은 모르고 애들 크는 속도에만 깜짝깜짝 놀란다. 키울 때 고달팠어도 뒤돌아 보면 한순간이다. 우후죽순처럼 자라 있는 아이의 모습에 뿌듯함과 함께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건 모든 부모의 심정일 듯. 어느 아침, 면도를 하려는데 나란히 걸린 큰둥이의 면도기가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다. 중학교 졸업 기념으로 사준 뒤 직접 걸어놓은 것인데도 느닷없이 낯설어진다. 법적으로는 아직이
마룻바닥에 서커스 열린다춤추듯 떠오르고 조심스럽게 움켜잡힌다넷집기에 고사리손 터질 듯꺾기 한 번에 탄식과 환호나이 채워가며 아이들도 알겠지운과 실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비상과 추락, 긴장과 방심성공과 실패가 무한반복 되는 게삶이란 걸가끔 공기놀이를 한다. 바닥에 공깃돌을 펼치고 던지고 받고 잡는 동안 나이를 획득해 나간다. 공깃돌 다섯 개라는 작은 소품으로 펼치는 놀이인데 손과 손가락의 조절 능력이 중요하다. 내가 할 때는 집중하느라 잘 모르지만 아이들이 자기 차례에 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작은 손으로 공깃돌
넌 너무 곱게 갈린 커피 같아숨이 막혀정말 곱구나, 가뿐 숨으로감탄하게 되지커피나 사람이나 똑같다고울수록 숨 막히는 것커피는 여러모로 신기한 음료다. 우선 각성효과. 마시면 정신을 차리게 된다. 피곤과 졸음이 싹 달아난다. 커피의 기원에 대한 여러 가지 전설들이 있지만 모두 공통점이 있다. 어떤 동물이 우연히 커피 열매를 먹고 업(?)되었다는 이야기... 두 번째는 마시는 방식이다. 딴 열매를 볶아서 껍질을 날리고(로스팅), 가루를 만들어(그라인딩), 뜨거운 물을 통과시켜(드리핑) 추출액을 마신다. 내가 알기에 이런 방식의 섭취는
꽃은 늘 밝은 줄만 알았지그늘 따위 없는 줄 알았지너도 늘 웃는 줄만 알았지아픔 따위 없는 줄 알았지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가신 하나. 무심히 부르는 동요지만 가만히 곱씹어 보면 정말 아름다운 시어다. 노란 개나리 꽃그늘을 살짝 도치한 것인데 그래서 개나리가 노란 것인지, 꽃그늘이 노랗다는 것인지 상상하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꽃이 만드는 그늘은 뭔가 아련한 느낌을 준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의 꽃도 그늘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되는 것이다. 바람에 흔들려 하늘거리는 꽃그늘은 왠지 애처로워 보여 덩달아
사립문 넘는 해그림자 밟아삼백 년 전 부잣집 구경한다돌담 위로 빼꼼 고개 내민 풀꽃이게 무슨 구경거리가 되나새침하게 말한다세월 굳으면 바람 되고부뚜막 식어 눈발 날리는그냥 그런 거지 마냥 있는 거지곳곳에 세월의 장난무심히 쌓여간다여행이든 촬영이든 고택을 선호한다. 궁궐은 별로고 여염집이 낫다. 전생에 왕족은 아니었나 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옛집이 그냥 좋다. 꼭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그 말을 들으려고 애쓰다 보면 여러 가지 상상이 든다. 여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의 일상은 어땠을까,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목이 간지럽다거나차가 더러워졌다고투덜거리지 말 것새끼 만들려고 저것들온힘 다해 날리는 거야바람 기다리는 간절함 곤충 유혹하는 절박함안다면 가늠한다면짜증 말고 감탄 한번만 보내줄 것바야흐로 식물들의 번식기다. 송홧가루, 민들레 포자, 온갖 화분(花粉)이 공중을 지배하고 있다. 식물들은 곤충을 유혹하려고 화려한 꽃을 피우거나 짙은 향을 뿜거나 달콤한 꿀을 만든다. 꽃가루를 날려줄 바람을 기다리기도 한다. 움직이지 않는 식물이라고 해서 씨를 뿌리려는 노력과 경쟁이 적은 것이 아니다. 치열하고 절박한 번식욕이다.사람에게는 귀찮은 계절이다.
섬이 섬을 낳았네가까움이 그리움을 낳았네청보리 익어 작은 섬의 풀빛 짙어질수록구름이 가려섬 그늘의 물빛 깊어질수록봄볕에 익어하얀 너의 낯빛 예뻐질수록작은 섬은 완만하고그리 움은 가파르다청보리 물결이 일렁이는 시기는 딱 요맘때다. 봄바람이 불어 파도를 만드는데 바다는 파란색, 땅은 초록색이다.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는 색깔이 하늘, 바다, 땅 어디든 물들이고 있다. 일상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회복받는 공간이다.가파도는 제주도에서 배로 십여분 떨어져 있는 작은 섬이다. 최남단인 마라도와 형제인 것 같다. 섬 전체가 굴곡 없이 납
잎글이란다파릇한 설렘이었고노오란 회한이었을단 한 장의 슥삭거림봄이 꽃잎 날리듯 가을 낙엽 떨구듯그리움 서러움 아쉬움 추려서저 좁은 공간에 써 내렸다바랜 시간이 누렇게 뜰 때 고스란한 이파리에 묻은 추억 낮게 가라앉는다 엽서를 보내거나 받은 경험은 까마득하다. 엽서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본 지도 한참 전의 일이다. 요즘 아이들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겠고 한 번도 못 봤을 수도 있다. 거의 박물관 전시품처럼 여겨질 것이다. 봉투에 담아서 내용을 모르게 보내는 편지와는 달리 엽서는 공개 서한이다. 손바닥 크기의 종이 한 장에 쓰는 글이라
휴지의 마음이라고 해두자가장 깊은 곳에 있거든녀석을 만나는 심정은 언제나다 써버린 허탈감그래도 잊지 말기심지 굳은 수수한 마음 없다면말끔한 생활도 없단 걸두루마리 화장지의 가장 안쪽에는 휴지심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있다. 휴지걸이에 끼워 넣을 수 있도록 형태를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어느 날 구겨져 덩그러니 놓인 휴지심을 보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쓸모를 다한 뒤에 버려진 것이다. 휴지심의 ‘심’이 마음(心)자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저것에도 마음이 있다면 어떤 마음일까?인간다움에 대한 정의는 무수히 많겠지만 사람을 ‘쓸모’로만
서러운 달 아니라고말 못하겠네볕 따스하고 꽃 무성할수록 빛 찬란하고 꿈 풍성할수록사무쳐 되떠오르는 너 어쩌자고 떠난 자리가 이토록 아름다운가 어쩌려고 남은 계절은이렇게 눈부신가바다가 보낸 네 웃음 산수유꽃잎 스쳐 노랗게온.다.4월을 왜 잔인한 달이라고 하는지 생각해 본다. 서럽고 서글픈 일들이 계절과 시기를 봐가면서 오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아마도 역설적인 표현일 것이다. 계절의 아름다움이 닥친 불행을 증폭시키지 않나 싶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이나 폭우나 폭염으로 힘든 여름, 우수에 젖게 만드는 가을은 이미 그 자체로 시련의 느낌
꽃이 숨으로 셈을 한다지나가는 사람 몇 명인지불어오는 바람 몇 도인지날아가는 새들 몇 마린지그렇게 숨 쉬어 세다 보면몽우리 열려 봄을 받는다천 숨, 만 숨 쉬며 꽃이 애써 불러온 봄을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지하며 가만히 하얀 숨을 듣는다자연이 위로를 주는 이유는 항상성(constancy)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김없기 때문이다. 사람처럼 약속을 깨거나 조울에 시달리는 법이 없다. 때 되면 싹이 돋고 꽃망울이 터지고 단풍이 들고 눈이 내린다. 자연의 변화는 구설수에 시달리지 않고 온다. 코로나19의 팬데믹 속에서도 블루밍 팬데믹, 흰눈
꽃샘바람이 매몰찰 걸 알아도된 눈 내려 잎들이 황망해질 걸다 알면서도다 각오하며기어이 기꺼이 분홍의 꽃잎 터뜨린다인적 없는 새벽 전철역에어머니가 깔았던 행상 좌판 같다벌 한 마리 보이지 않고 나만 차가운 꽃나무를 쓰다듬고 있다아직이라고 느끼니까 벌써라고 반응하게 된다. 볕 잘 드는 쪽 강둑길에 목련나무가 꽃몽우리를 뭉치고 있다. 산수유도 파스텔톤 수채화를 완성하듯 슬슬 연노란 채색 시동을 건다. 매화나무는 이미 희거나 붉은 잎들을 세상에 내보냈다. 봄의 신호는 이렇듯 동시다발 꽃다발이다.벌이나 나비 같은 곤충들은 보이지 않는데, 사
어느쪽이냐고 묻는 집요함에버틸 재간은 없어도안다이 순간도 되새겨질 것먼 훗날에 되돌아올 것축배와 고배가 엇갈리는 순간어느편이냐고 또 묻는 당신에게답한다헛되이 그러나 기꺼이나는 시간의 편이고 싶다고딸아이의 새 역사 교과서를 보고 놀랐다. 표지가 너무 예쁘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는 여행자-아마도 여학생-의 뒷모습이다. 해질녘인지 하늘은 푸르기도 붉기도 하다. 베낭을 메고 사진기를 옆에 두었다. 역사가 무엇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인 듯하다(이렇게 예쁜 책으로 공부했더라면 하는 꼰대스러운 생각은 비밀로 하고 싶다).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