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공섭의 빛그림 (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시골장터의 맛과 멋, 그리고 향기 유년 시절 5일장에 가신 어머니를 동구 밖 고갯마루에서 해가 어둑해 질 때까지 기다리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어머니께서 머리에 이고 오시는 장 보따리가 정겹기만 한 그때의 5일장은 생활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유통수단이었다.옛날의 5일장은 근처의 지역들이 장날을 달리 정하여 열렸으며, 이장에서 저장사이의 거리는 보통 걸어서 하루 정도였다고 한다. 보부상들은 장터를 돌며 물품을 팔았으며, 장터에는 좌판을 열 공간 이외에도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주막과 같은 공간이 있었고, 장꾼들이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국밥집과 국수집 같은 음식점 길공섭의 빛그림 | 길공섭 | 2019-07-19 09:49 곰삭은 문화를 추억하며 홍명상가와 중앙데파트는 1974년 당시 대전 천 복개공사와 함께 각 4층과 8층 규모로 건축되어 대전역과 함께 원도심의 중심역할을 하였다.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는 대전의 페션을 선도하였으며 대전의 상징 건물로 자리하였고 부설 공원은 도심 속 시민들의 쉼터와 만남의 장소, 그리고 소공연장으로 추억을 함께 했던 곳으로 사랑받던 곳이다.목척교(木尺橋)는 6.25동란 땐 서울 등지에서 남하한 피란민들이 생이별한 가족 친지를 찾느라 목척교로 모여들었던 것. 피란 공간에서 애환의 다리로 유명세를 탄 때문인지 우리 가요사 에도 목척교는 흔적을 길공섭의 빛그림 | 길공섭 | 2019-04-16 13:52 정겨움이 가득한 달동네를 추억하며 오랜 세월 잘 숙성되어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 좁은 골목길에 하하 호호 웃음이 넘치며, 된장찌개 구수한 내움이 담 넘어 풀풀해도 행복 바이러스가 넘치는 달동네, 그곳의 속살 속에 배어있는 곰삭은 향을 호흡해보자.한국전쟁 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았을까? 지게와 낫 그리고 고무신이 전부였던 빈곤의 나라. 국민소득 66 달러(지금으로 환산1,000달러), 그 고난의 시대에 우리의 삶은 어떠했을까?역사와 추억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곳’ 대동산1번지 달동네가 그 추억의 여운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으며, 고소한 이야기가 진동 하는 곳 길공섭의 빛그림 | 길공섭 | 2019-03-04 18:09 대청호반에서 건져 올린 사색의 편린(片鱗) 새벽 4시쯤이면 느낌으로 눈을 뜬다. 일상에 특별함이 없으면 대청호와 함께한다.물안개 자욱한 대청호를 그리며 카메라 가방을 챙긴다. 행여 가족들이 깰라, 까치발로 살금살금 나와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면 마음은 벌써 대청호에 가 있다. 주산동 고갯마루를 지나 추동마을 앞을 달릴 땐 코끝에 상쾌한 싱그러움이 내제된 끼를 불러낸다. 거주지에서 대청호까지는 약 10km, 10여분이면 계족산 중턱에 도착한다.오늘은 자연의 신비한 유희를 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먼동이 희미하게 터오고 있는 백골산과 채봉골 자락 위로 운해(雲海)가 깔려있는 것 길공섭의 빛그림 | 길공섭 | 2018-02-06 14:18 처음처음1끝끝